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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칼럼] 한글 표기능력 확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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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계자 작성일06-06-29 10:54 조회3,8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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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한글의 표기능력 확충을 위해



 
 
나는 한국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나쁘다고도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오다가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머리를 가진 한국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 국한되는 얘기일 뿐 모든 한국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나는 모든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바로 한국 사람들의 별나게 섬세한 소리 식별 능력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과 ‘풀’과 ‘뿔’을 구별할 줄 안다. ‘기다’ ‘키다’ ‘끼다’의 엇비슷한 말도 그것이 서로 다른 동작인 줄 분명하게 알아듣는다. ‘동(東)’과 ‘통(筒)’과 ‘똥(糞)’이 전혀 다른 것임도 귀로 듣고 금세 식별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밝은 귀를 타고난 것일까.



이탈리아 사람, 프랑스 사람들은 푸치니의 유명한 오페라를 ‘또스까’로 발음하고 영국 사람, 독일 사람들은 ‘토스카’로 달리 발음한다. 그 차이를 우리는 알아들어도 그들은 못 알아듣는다. 둘 다 똑같이 ‘TOSCA’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토’와 ‘또’, ‘카’와 ‘까’라는 소리의 뉘앙스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밝은 귀에 못지않게 그를 구별해 적는 한글의 빼어난 표기 능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처럼 섬세한 우리 귀, 그처럼 세계에 독보적인 문자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자랑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젊은이들 사이에 ‘팬클럽’이 많다는 말에 ‘pen club’이 많은 줄 알고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실은 이효리, 비 등의 ‘fan club’인 줄 뒤늦게야 알고 실소했다. ‘Marx’라는 단음철(單音綴)의 이름을 우리는 원음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맑스’라고 원고에 적으면 출판사에서는 에누리 없이 거의 일본식 표기처럼 ‘마르크스’라는 4음철의 표기로 바로(?)잡아 놓는 데에 나는 매번 당황하고 있다. 우리는 ‘Goethe’를 한글로 ‘괴테’로 똑바로 표기하면서도 그의 대표작 ‘화우스트’는 왜 ‘파우스트’로 엉뚱하게 표기하는 것인지….



서양 사람들은 표음 가능성이 한글보다 훨씬 떨어지는 알파벳으로 지역마다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갖가지 기교와 재주를 부리고 있다. ‘외’나 ‘위’의 발음을 위해 ‘O’와 ‘U’ 모음 위에 두 점을 찍기도 하고 ‘애’와 ‘에’를 구별하기 위해 ‘e’ 모음 위에 방향이 상반되는 악센트 표시를 하는 것쯤은 약과다. 동유럽 국가에서는 모음뿐만 아니라 자음(子音)에도 뿔이나 꼬리를 달기도 하고 심지어 글씨 허리에 줄을 치기도 한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Walesa’는 ‘l’의 허리에 줄을 쳐서 ‘w’ 소리를 내게 하고, ‘e’ 밑에는 꼬리를 달아 ‘en’으로 발음하도록 해서 ‘발레사’가 아니라 ‘바웬사’가 된다.



만일 우리도 그런 재주를 피운다면 우리말에는 원래 없지만 서양 언어에는 널리 사용되는 ‘f’나 ‘v’, 또는 ‘th’ 발음 같은 것도 한글로 얼마든지 표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가령 15세기 국어에서 쓰이던 순경음을 응용해 ‘ㅍ’ 아래에 ‘ㅇ’을 붙여 ‘f’를 표기하고, ‘ㅂ’ 아래에 ‘ㅇ’을 붙여 ‘v’를 표기하는 식으로….



그뿐 아니다. ‘ㅑ’에다 ‘ㅣ’를 붙여 ‘ㅒ’를 표기하고 ‘ㅕ’에다 ‘ㅣ’를 붙여 ‘ㅖ’를 표기하면서 ‘ㅛ’에다는 ‘ㅣ’를 왜 갖다 붙이지 못할까. 그럴 수만 있다면 20세기 유럽 새 음악의 개척자 ‘Schoenberg’를 (굳이 한글로 원음 비슷하게 표기하자면 ‘쇼’에다 ‘ㅣ’를 붙일 수 없는 현행 철자법으로는 ‘슈왼베르크’라고나 적어야 할까) 엉뚱하게 ‘쇤베르크’라고 표기하는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떻든 이처럼 새로운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을 개발하고 도입해서 한글의 표음 가능성을 확충 확대하는 개방적인 진화가 진정 세계의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세계화 시대의 문자: 한글’로 발전하는 길은 아닐지.



최정호 객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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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9 03:00 입력
 


 

 

 

*이 칼럼이 기폭제가 되어 한글 세계화의 필요성과 효용성, 구체적인 방안 등을 더 많은 국민들과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식하고 앞으로 공론화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에서 이런 뜻 깊은 글을 실은 것으로 볼 때,  이제 한글 세계화의 실현 시기가 바짝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월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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