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국립국어원장, "한글의 보편성, 소수언어권과 공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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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계자 작성일07-02-22 14:27 조회5,095회 댓글0건본문
[초대석]취임 1주년 맞은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딱딱하고 권위적인 문법 교사 같은 국립국어원의 이미지를 친절한 우리말 상담사로 변환시키겠다는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그는 표준어 중심주의에 젖은 우리 어문정책의 변화를 구상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한글의 보편성, 소수언어권과 공유하자”
“알파벳은 본디 중동지역 셈족의 문자였지만 유럽으로 건너가 로마자가 되면서 서구의 표준문자가 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입증된 한글을 한국의 것으로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세계 보편문자로 공유해야 합니다.”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깐깐한 ‘국어 지킴이’가 아니라 후덕한 ‘한글 나눔이’였다. 15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국립국어원 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권에서 보편문자(universal letter)로 한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에 대해 일종의 카피레프트(저작권 공유) 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비약적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에 한글이라는 무형재가 기여한 부분이 큽니다. 한글을 통해 누구나 손쉽고 빠르게 지식정보를 교환하고 축적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국 10대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가장 빠르고 손쉽게 보낸다는 점에서도 확인되지만 한글의 문자입력 속도는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해 8배나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20세기 제국주의의 언어침략과 약탈의 피해자였던 다른 아시아 국가의 상황과 비교할 때 축복에 가깝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20세기 문화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특히 아시아권에서 소멸된 언어가 많습니다. 몽골어와 만주어처럼 문자가 소멸되는가 하면 필리핀처럼 원주민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서 국민 간 의사소통의 문제가 심각해 국가 통합의 어려움을 겪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 원장은 이런 나라에 한국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인 한글문자 사용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음성을 표기할 수 있는 보편문자로 손색이 없다. 훈민정음에는 현재 우리말에 없는 발음 표기 방법이 수없이 등장한다. ‘f’와 ‘v’ 발음에 해당하는 ㆄ, 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ㅅ과 ㅈ의 경우도 양 작대기 중 한쪽을 길게 늘이는 방식으로 미묘한 발음 차이를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원장은 한국어에 없는 발음 표기를 위해 ㆄ, ㅸ과 같은 표기를 재도입하는 것에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로 인한 의사소통의 혼란과 관련 표기를 고치는 데 들어갈 막대한 경제적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가 없는 다른 나라에서 한글 문자를 채택할 경우에는 이런 특수기호의 활용 가능성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젠 국어 지키기보다 한글 나누기 운동 중요”
한국어에 목마른 외국에 ‘세종학당’ 100곳 설립
그는 이를 ‘한글 수출’이니 ‘한글의 세계화’로 표현하는 것에 반대했다. 한글을 한국인의 것으로만 바라보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언어학자대회의 주제가 ‘소멸 위기에 처한 변방언어의 보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언어학계에선 20세기 언어학의 중심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서 변방 문화의 다원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의 올해 역점사업 중 하나로 국립국어원이 추진 중인 ‘세종학당’ 사업도 이런 문화다원주의를 기초정신으로 깔고 있다. 세종학당 사업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느는 나라, 특히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5년간 100곳의 세종학당을 만들어 나가는 사업이다.
이 원장의 이런 열린 한글관은 국내 어문정책에도 적용된다. 방언학을 전공한 그는 역대 표준어 중심주의의 국어정책에 의해 배격됐던 사투리도 껴안아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서울에서 쓰는 ‘부추’만 맞는 말이고 전남 지역에서 쓰는 ‘솔’은 틀린 뼈繭遮?이분법의 지배를 받았다면 이젠 부추와 솔을 나란히 존중하는 다원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주로 어문규정에 의존하던 어문정책을 사전 중심으로 전환해 가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표기법, 표준발음법과 같은 어문규정을 가지고 국민의 언어생활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는 통일된 국어사전이 나오기 전인 1933년 먼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된 한국만의 역사적 산물입니다. 한국인들이 영어사전은 닳도록 찾아보면서 국어사전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졸속 제작됐다고 비판 받아 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전체 체계와 예문까지 뜯어고쳐 2008년 새롭게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로 대표되는 외래어 표기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규범 준수의 의무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상규 원장:
△1953년 경북 영천 출생 △1976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졸업 △1979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석사 △1979∼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방언조사연구원 △1982∼83년 울산대 교수 △1983년∼현재 경북대 교수 △1989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박사 △2006년∼현재 국립국어원장
△국어학회 일석학술장려상(1989년), 대통령표창(2004년) 수상
△방언연구방법론(1988년), 국어방언학(1994년), 방언학(1995년), 경북방언사전(2001년), 언어자료 처리와 방언지도(2005년) 등 21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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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0 03:00 입력
딱딱하고 권위적인 문법 교사 같은 국립국어원의 이미지를 친절한 우리말 상담사로 변환시키겠다는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그는 표준어 중심주의에 젖은 우리 어문정책의 변화를 구상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한글의 보편성, 소수언어권과 공유하자”
“알파벳은 본디 중동지역 셈족의 문자였지만 유럽으로 건너가 로마자가 되면서 서구의 표준문자가 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입증된 한글을 한국의 것으로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세계 보편문자로 공유해야 합니다.”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깐깐한 ‘국어 지킴이’가 아니라 후덕한 ‘한글 나눔이’였다. 15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국립국어원 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권에서 보편문자(universal letter)로 한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에 대해 일종의 카피레프트(저작권 공유) 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비약적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에 한글이라는 무형재가 기여한 부분이 큽니다. 한글을 통해 누구나 손쉽고 빠르게 지식정보를 교환하고 축적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국 10대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가장 빠르고 손쉽게 보낸다는 점에서도 확인되지만 한글의 문자입력 속도는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해 8배나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20세기 제국주의의 언어침략과 약탈의 피해자였던 다른 아시아 국가의 상황과 비교할 때 축복에 가깝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20세기 문화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특히 아시아권에서 소멸된 언어가 많습니다. 몽골어와 만주어처럼 문자가 소멸되는가 하면 필리핀처럼 원주민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서 국민 간 의사소통의 문제가 심각해 국가 통합의 어려움을 겪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 원장은 이런 나라에 한국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인 한글문자 사용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음성을 표기할 수 있는 보편문자로 손색이 없다. 훈민정음에는 현재 우리말에 없는 발음 표기 방법이 수없이 등장한다. ‘f’와 ‘v’ 발음에 해당하는 ㆄ, 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ㅅ과 ㅈ의 경우도 양 작대기 중 한쪽을 길게 늘이는 방식으로 미묘한 발음 차이를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원장은 한국어에 없는 발음 표기를 위해 ㆄ, ㅸ과 같은 표기를 재도입하는 것에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로 인한 의사소통의 혼란과 관련 표기를 고치는 데 들어갈 막대한 경제적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가 없는 다른 나라에서 한글 문자를 채택할 경우에는 이런 특수기호의 활용 가능성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젠 국어 지키기보다 한글 나누기 운동 중요”
한국어에 목마른 외국에 ‘세종학당’ 100곳 설립
그는 이를 ‘한글 수출’이니 ‘한글의 세계화’로 표현하는 것에 반대했다. 한글을 한국인의 것으로만 바라보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언어학자대회의 주제가 ‘소멸 위기에 처한 변방언어의 보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언어학계에선 20세기 언어학의 중심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서 변방 문화의 다원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의 올해 역점사업 중 하나로 국립국어원이 추진 중인 ‘세종학당’ 사업도 이런 문화다원주의를 기초정신으로 깔고 있다. 세종학당 사업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느는 나라, 특히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5년간 100곳의 세종학당을 만들어 나가는 사업이다.
이 원장의 이런 열린 한글관은 국내 어문정책에도 적용된다. 방언학을 전공한 그는 역대 표준어 중심주의의 국어정책에 의해 배격됐던 사투리도 껴안아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엔 서울에서 쓰는 ‘부추’만 맞는 말이고 전남 지역에서 쓰는 ‘솔’은 틀린 뼈繭遮?이분법의 지배를 받았다면 이젠 부추와 솔을 나란히 존중하는 다원주의로 가야 합니다.”
그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주로 어문규정에 의존하던 어문정책을 사전 중심으로 전환해 가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표기법, 표준발음법과 같은 어문규정을 가지고 국민의 언어생활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는 통일된 국어사전이 나오기 전인 1933년 먼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된 한국만의 역사적 산물입니다. 한국인들이 영어사전은 닳도록 찾아보면서 국어사전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졸속 제작됐다고 비판 받아 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전체 체계와 예문까지 뜯어고쳐 2008년 새롭게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로 대표되는 외래어 표기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규범 준수의 의무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상규 원장:
△1953년 경북 영천 출생 △1976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졸업 △1979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석사 △1979∼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방언조사연구원 △1982∼83년 울산대 교수 △1983년∼현재 경북대 교수 △1989년 경북대 국어국문과 박사 △2006년∼현재 국립국어원장
△국어학회 일석학술장려상(1989년), 대통령표창(2004년) 수상
△방언연구방법론(1988년), 국어방언학(1994년), 방언학(1995년), 경북방언사전(2001년), 언어자료 처리와 방언지도(2005년) 등 21권의 저서와 역서를 펴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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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0 03: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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